[소소한 리뷰] 단절되었던 너를 향한 노래, 제이클레프 [o, pruned]
[소소한 리뷰] 단절되었던 너를 향한 노래, 제이클레프 [o, pruned]
  • 안정욱 인턴기자
  • 승인 2023.05.07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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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틈은 있다. 그 틈을 숙달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세상에 대한 공통된 약속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내면 깊숙하게 새겨진 틈들을 숨기는 동안 그것들은 드러나서는 안 되는 마치 처럼 자리해 버렸다. ‘은 세상과 나를, 그리고 다시 나와 너를 가르는 불순한 것이 되어버리고 서로를 재단하며 단정해 버리도록 유도한다. ‘을 가지고 있는 네가 잘못됐다는 식의 논리를 들이밀며 자신 또한 지니고 있을 그 은 무시한 채로.

 

제이클레프(Jclef)의 고민은 이런 자연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스스로 자연스러움의 바탕으로 삼는 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2018, 그녀의 첫 앨범이었던 [Flaw, Flaw] 속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라이너 노트 속 그녀의 진술처럼이나 [Flaw, Flaw]는 거대한 여행에 가까웠다. “당신이 되었으면 하는 멋진 모습은 차마 담을 수 없어동기부여를 하고 떠난”(‘FLAW, FLAW’) 여정은 나 또한 네가 갖춰야만 하는 뭔가가 있다 생각하지 않는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만나게 하고(‘동행자’) 길고 길었던 에 대한 마침표는 구원이 아닌 종말이었다는 것을 자각하며, 절벽에 서서 이르렀던 결론 속에 제이클레프는 교훈처럼 그것들을 설파하기보단 리셋하듯 세상을 멸망시켜 버리는 것으로 마음을 먹는다. (“지구 멸망 한 시간 전”)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났다. 그녀는 [O, Pruned]라는 이름의 EP 한 장을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 제목처럼이나 가지가 잘려 나간 듯 단절된친구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주는 걸 목표로 한 [O, Pruned]는 멸망한 채 마무리되었던 [Flaw, Flaw]의 그 이후를 담은 에필로그이자 새로운 시작을 앞둔 프롤로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절된 '너'를 위한 지난 기간 동안 무르익어 간 제이클레프의 시선들이 음악의 프로덕션이나 가사의 어조 속에 담담하게 배어있었다. 전자음 기반의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선보였던 [Flaw, Flaw]였다면, [O, Pruned]의 경우 짐조니’(gimjonny)의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를 필두로 보다 따뜻한 포크 계열의 음악을 지향했다.

O, Pruned
O, Pruned

[Flaw, Flaw]에서 염세적인 단어를 선별하며 날 선 듯 뱉어내던 제이클레프는 이제 친숙한 방식으로 를 향해 부드럽게 다리를 이어낸다. 트레몰로 치듯 천천히 영역을 넓혀 보이는 기타 선율 위로 감싸지는 미숙하지만,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두려움 따위는 이제 끝났을 거라고 읊어내며 (‘O, Pruned’), 그녀의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이루어진 듯한 작은 공간 속에서 점차 코러스와 박수 사운드로 스케이프를 키우며 입체적으로 자신들의 공간 속에 같이 참여해줄 것을 감미롭게 요청한다. ('jonny’s sofa') “두고 간 기타"를 꺼내 "노래의 다음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세계가 명멸하는 듯 보이더라도 순간 뻗쳐지는 허망함에 눈을 감는 것이 아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빛을 향해, 그리고 너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어내는 것처럼.

 

제이클레프는 여전히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O, Pruned]은 그에 대한 명확한 결과물이다. 공백의 시간 동안에 그녀는 스스로가 지어낸 작은 쉘터 속에서 울타리 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누구나 스며들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두었다. 그 공간은 마치 세계에 대한 작은 틈새이자, ‘이라면 지닐 수밖에 없을 모두를 위한 곳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지불값은 단지 사랑이면 충분했다.

 

 

안정욱 인턴기자. 스타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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