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10cm, 3집 EP 앨범 발매
찌질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10cm, 3집 EP 앨범 발매
  • 원정민 인턴기자
  • 승인 2021.11.2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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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과 함께 지난 11월 11일, 10cm가 세 번째 EP 앨범으로 찾아왔다. 그동안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왔던 그지만, 8년 만의 EP 앨범이라 감회가 새롭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소개와 주관적인 감상을 담아, 찬찬히 이번 앨범을 살펴보기로 하자.

 

10cm의 3번째 Ep앨범. 무명시절부터 10cm와 앨범 재킷 작업을 함께한 스팍스에디션(Sparks Edition)이 이번에도 디자인을 맡았다. 쪼개진 다섯 개의 하트로 다섯 가지 수록곡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사진]=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제공

 

  1.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

도입부를 듣자마자 타이틀 곡임을 직감했다.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라는 매력적인 가사가 그대로 제목이 되어버렸다. 이 노래를 쭉 듣다 보면 ‘10cm가 이런 곡을 썼다고?’와 같은 반응이 절로 나온다. 이부자리를 치우다 상대의 양말 한 짝이 나와서 울고, 나는 왜 이런 사람 이런 모습이고 이런 사랑을 하는지 한탄하던 10cm 음악의 주인공이 어쩐지 이별에 있어 쿨해졌다.

 

이별 통보를 받은 것을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라는 말로 담담히 서술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별을 통보받은 것까지는 기존 10cm 음악과 비슷하다. 주인공은 아무런 변명을 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곤해 잠이 든다. 이별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상대와 관계를 정리하며 관계에 피곤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주인공은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하며, 상대를 생각하고 아파하기엔 너무 바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갈팡질팡한다. 눈물이 맺힌 건지 졸려서 그런 건지 확신하지 못하고, 후자에 힘을 실어 어쩌면 상대를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 말한다. 후에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 더 강한 부정을 한다.

 

이별이 항상 지독할 필요는 없고, 우리도 각자 가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는 가사는 표면적으로 10cm 세계관 속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전의 많은 10cm의 음악에서 주인공들은 미성숙한 이별을 한 것일까? 이번 10cm의 3번째 EP 타이틀 곡은 성숙한 이별이란 과연 무엇인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주제일 것 같다. 나는 이전의 그들도 미성숙한 이별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별 이후 사람들이 한 번쯤은 다 겪어봤을 감정, 그렇지만 표면으로 내놓기엔 부끄럽던 감정들을 그들은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별에는 시간이 걸린다. 당장 상대와 나의 관계는 매듭이 지어졌더라도, 내가 마무리해야 할 매듭이 잔존한다. 이전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감정들을 거치면서, 해어짐의 마지막 단추를 천천히 잠갔을 것이다. 성숙과 미성숙의 문제라기보단 사람마다 이별의 단계와 대처법이 다르니 순서와 속도가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곡의 주인공도 지금은 이별을 겪고 비교적 괜찮아 보이지만, 삶이 너무 바빠서 감정이 묻혀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별의 슬픔에 더 바쁘게 살아가며 자신의 슬픔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간 감정이 터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보통 10cm의 노래에서는 이별의 이유를 무조건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상대보다 자신을 낮추는 자존감 낮은 연애를 묘사한 경우가 많은데, 이 노래에서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 오히려 이별 후 상황과 자신의 마음에 더 집중한 곡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확실히 주인공은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널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았었나봐’라는 부정이 나오고, 바로 노래의 분위기가 반전되는 기점이 등장한다. 어쩌면 주인공이 제일 하고 싶었던 말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주인공은 그랬을 리 없다고 (널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부정), 상대를 사랑했던 시간을 나열한다. 그 시간을 꿈같은 날들이라고 묘사한 부분이 애틋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시간을 되돌려 갈 수 있다 해도 이젠 너무 바쁘다고 말한다. 어쩌면 시간을 되돌려 가도, 예전처럼은 지내지 못할 것을 암시한다. 눈물은 말랐을지도 마음이 죽은 걸지도 차갑게 굳어질지도 모른다며 “어쩌면 널 사랑하지 않을건가봐”라고 횡설수설하는 주인공. 앞서 눈물이 맺힌 건지 피곤한 건지 헷갈렸던 그지만, 이제는 눈물이라 확신하고 있다. 단정적인 표현 하나 없고, 시제도 뒤죽박죽이다. ‘널 사랑하지 않아’가 아닌 ‘널 사랑하지 않을건가봐’다. 이제 나는 너를 잊었고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고 뒤늦게 강하게 말해보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오히려 아쉬울 게 하나 없는 사람은 굳이 그것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것을.

 

  1. 열심히 할게

<10cm 노래 속 주인공의 성격이 잘 묻어나오는 가사>

 

너에겐 턱없이 모자랐던 모습이
얼마나 말도 안 되었었는지
왜 몰랐던 걸까

 

너에겐 턱없이
모자랐던 모습이
얼마나 말도 안 되었었는지
왜 몰랐던 걸까

 

아직도 모자라 노력하면 할수록
아무래도 내가 바라는 건 다 욕심이니까
나 신경 쓰지 마
너무 괜찮으니까

 

-열심히 할게 中-


 

10cm가 잘하는 장르의 음악이다. ‘어제 나는 너를 버렸어’처럼 첫 소절인 ‘열심히 할게’가 제목이 되었다. 권정열은 실제로 곡을 만들 때도, ‘열심히 할게’부터 생각이 났고,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갔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노래 중 제일 높고 어려운 노래라고 언급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상대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피곤하고 귀찮아도 일찍 일어나고, 싫어하는 운동을 하며 건강하게 열심히 살겠다고 한다. 헤어졌던 상대가 평소에 “운동 좀 해라”, “건강 챙겨라” 등의 말을 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헤어질 때 뱉은 형식적인 “잘 지내” “건강해” 등의 당부에도 의미부여를 하고, 그 말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은 상대방을 참 많이 좋아했나 보다. 오늘도 의미 없는 하루라는 가사도 왠지 내가 좋아했던 네가 더는 내 곁에 없으니 하루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곡에서도 10cm의 연애 스타일이 가득 담겨있다. 이별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고, 상대를 자신보다 과분하게 생각하는 태도, 낮은 자존감. 자신에겐 야박하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참 예쁘다. 이 노래에서도 주인공은 상대에게 바라는 점이 없다. 오직 잘 지내다 혹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칭찬해달라는 한 마디 지나가는 듯한 말이 전부이다.

 

누구나 자존감이 낮은 시기를 겪을 수 있고, 그때의 칠흑 같은 어둠을 잘 알기에 10cm 노래의 주인공들에게는 항상 “넌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면에서는 이별 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현재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에게 응원을 바라는 느낌도 든다. 계기가 어떻게 되었든 가사처럼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이 또한 성장의 거름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을 거쳐 가는 심정을 이 곡에 솔직하게 담았다.

 

 

  1.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

3집 EP 앨범의 더블 타이틀. 꼭 물음표를 강조해서 읽어야 한다. 곡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홀로 되뇌어보는 사랑의 속삭임.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예쁘고 그 표현 방법도 사랑스러워서 들을수록 애정이 많이 가는 곡이다. “너의 맘을 모두 내가 가질 수는 없을까”라고 말하는 주인공. “내가 가지고 싶어.” “가져도 될까?” 가 아닌 “가질 수는 없을까?”라는 간곡한 물음에는 조심스러운 주인공의 마음이 담겨있다. 가진다는 표현 자체도 미안한지 가진다는 말이 물건도 아니고, 그 표현을 쓰지 않겠다 다짐한다.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또 번져 나오고 흘러나온 나온 마음이 닦을 수도 없이 넘쳐 방을 가득 채운다는 말은 상대에 대한 흘러넘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이 가사를 말했을 시점은 밤이 깊어졌을 때지만, 밤이 희미해지고 빛이 밝아져 왔을 때도 주인공의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은 너무 커져 막을 수도 없이 터져버린다. 단순히 새벽이라는 시간에 휘둘려 감성적으로 접근한 상태가 아닌, 의지로도 막기 힘든 꾸준한 마음임을 보여준다.

 

이렇게나 좋아하는 마음이지만, 별나라만큼 멀리 느껴지는 나의 욕심인 것만 같은 상대이다. 1절에서는 “너는 저 별나라 내가 보이기나 할까”라고 말하며 상대의 입장에서 보이는 나를 생각하지만, 2절에서는 “별나라에 닿을 수 있을까”라고 말하며 내가 상대에게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어쩌면 우리의 주인공은 좋아하는 마음에 힘입어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상대를 향해서 한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1. Condition

10cm가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작곡한 곡으로, 가사에 초기 10cm의 감성이 많이 묻어난다. ‘O이 O 같지 않아’라는 형태의 문장이 반복된다. 하루, 내 집, 먹는 거, 왜 다 그것들답지 않고, 내 것 같지 않을까? 가끔 무엇을 해도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지고, 분명 나의 소유물인데도 나의 모든 것들이 내 것 같지 않을 때가 있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왜 이러고 사는지 울컥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의미 있고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오늘의 충분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나에게만 들리는 소음, 나에게만 풍기는 냄새를 느낀다. 그만큼 어지러운 내면을 뒤로하고 그 어떤 빈자리만큼 툭 건드려도 울먹거리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자신의 마음을 알고 툭툭 던져주는 듯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귀에 꽂힐 것이다. “힘내”, “괜찮아”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가사는 없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 노래는 그만큼 나의 마음을 울게 만들지 않을 수가 없다. 힘들었던 하루를 보낸 후 침대에 누워 힘을 빼고 편안하게 이 노래를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1. Please Don’t Stop Your Singing

10cm가 코로나 19의 확산 이후 공연장에서 들을 수 없게 된 팬들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쓴 곡이다. 팬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 문장, 한 문장, 절절하게 묻어나온다. 어두운 밤거리 모든 불빛들이 그대만 비춘다는 표현은 어쩌면 어두운 공연장에서도 뚜렷하게 보이고 들리는 팬들의 마음을 알아본 이의 표현이 아닐까? 밤이 새도록 불이 켜지고 선명해져도 밤낮으로 노래를 멈추지 말라고, 주인공은 반복하여 말하고 있다. 그만큼 간절해 보인다. 가사 그대로 노래를 멈추지 말아 달라는 뜻도 있겠지만, 서로의 삶이 행복하길 바라는 따뜻한 응원의 외침 같기도 하다. 지금 공연장에서 10cm가 이 곡을 부른다면, 그의 목소리만이 공연장을 부드럽게 감싸겠지만, 그것 또한 가사의 절절함을 강조해서 미완의 매력을 부각할 것이다. 후에 관객의 응답이 추가되어 최종적으로 완성된 상호 간의 이야기도 기대해본다.


타이틀 곡 선정 비하인드 스토리

 

앨범 구상 초기에는 ‘열심히 할게’가 타이틀 곡이었다. 멜로디를 차곡차곡 써놓고 보니 너무 좋아서 타이틀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 EP앨범을 단독으로 대변할만한 무게감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판단하에 ‘열심히 할게’는 수록곡으로 남았다.

 

다음 타깃은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였다.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를 녹음하기 전 이 곡만의 감성이 눈에 들어왔다. 10cm만이 가질 수 있는 정서와 10cm가 가고 있는 방향이 동시에 담겨 밸런스가 균등하다고 생각했다.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 악기 녹음을 하고 있는데, 다들 “어?”하고 놀랐다. 노래 녹음까지 들어가니 이거다 싶었다. 이 또한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 처럼 10cm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담았고 묘한 섹시함까지 느껴졌다.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를 버리기에는 마음이 너무 안 좋았고,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와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를 더블 타이틀로 삼았다.

-권정열-

 


 

왜 대중은 10cm의 음악을 좋아할까?

 

10cm 노래의 주인공은 미워할 수가 없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응원해주고 싶다. 비슷한 성격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루는 내용이 다르다. 이번 앨범만 봐도 ‘어제 너는 나를 버렸어’는 이별 직후 자신의 감정과 생활을 서술하듯 노래하고, ‘열심히 할게’는 이별 이후 열심히 살겠다는 자신의 포부를 담았다. ‘가진다는 말은 좀 그렇지’는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너무나도 예쁘게 표현했다. 노래가 한 편의 이야기 같고, 가사 하나하나가 연속되는 장면이 되어 펼쳐진다. 찌질하지만, 지켜야 할 선은 넘지 않는다. 우리가 감추고 싶은 이야기지만 이 친구는 자신을 꾸밈없이 뱉어낸다. 그런 솔직한 모습이 어떤 면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강해 보인다.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위로해주는 것 같다. 그의 이야기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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