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인뉴스 유수미 인턴기자] 영화의 제목이 ‘클레어의 카메라’ 인 것처럼 영화 역시 클레어의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통해 만희, 완수, 양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엮어진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꼭 얽히고설킨 트라이앵글 같다. 완수와의 관계에 대한 질투심이 시초가 되어 만희는 급작스레 양혜에게 해고 통보를 받는다. 양혜는 완수와 사적으로 가까워지길 원하지만 완수는 그런 양혜를 밀어내고 공적으로만 엮이자고 단언한다. 완수의 마음 한구석엔 아직도 만희의 존재가 남아있는 듯하다.
세 사람의 삼자대면은 등장하진 않지만 클레어를 통해 우리는 세 사람 사이가 “삼각관계” 라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그만큼 클레어는 내러티브 전개를 원활히 이끌어주는 주 캐릭터이며 클레어의 사진을 통해 서로는 그동안 잘 몰랐던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제3자의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하나씩 양파껍질 벗기듯 만희의 “해고”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나가며 전개되는 플롯이 재밌게 느껴졌다.

완수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대변되는 장면이다. 완수는 만희에게 왜 짧은 바지를 입냐고 무어라 하면서 너는 너무 예쁘다고, 아니 영혼 자체가 예쁘다며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만희는 악을 쓰며 잔소리를 해대는 완수를 향해 기분이 언짢은 표정을 짓고는 가라고 토로한다. 만희가 예쁘고 또 좋은데, 뭐 어찌할 수 없는 그 답답함이 완수의 언성 높은 목소리에 묻어 나온다.
세 사람 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원하지만 서로의 관계는 어긋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만희는 짤리고, 완수는 만희를 “바라보기만” 해야 하고, 양혜는 아직도 만희를 생각하는 완수를 보며 질투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고. 여기서 문득 든 생각은 ‘사람과의 관계란 대체 뭘까?’ 라는 것이다.
그것은 가끔은 참 단순해 보이다가도 너무나도 복잡해서 마치 얽히고설킨 거미줄 같기도 하다. 지금 보는 세 사람 처럼, 서로가 저마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관계는 어떻게 명명해야 할까. 관계가 뭐 길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는 걸까. 의문점만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빙빙 돌 뿐이다. 다만 영화를 보며 알 수 있는 건 관계란 너무나도 미묘한 감정 선으로 이루어진 예민한 것,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만희는 천 조각을 가위로 자르며 스트레스를 푼다. 실질적으로는 “해고”에서 오는 스트레스, 궁극적으로는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두 번째 사진이 완수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사진이었다면, 지금 이사진은 만희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 준다. 마치 조각난 종이 조각은 “삼각관계”로 인해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중학생 때 나 또한 사람과의 사이에서 크나큰 스트레스를 겪었다. 한 아이의 질투로 인해 친한 친구를 뺏기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한순간에 무리에서 떨궈지는 모습을 봐야 했다. 중학생 시절의 절반을 “관계”에 치중하고 또 그만큼 신경을 쓰며 학교생활을 했다. 좋은 관계보다는 자주 어긋나고, 가끔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또 괜스레 화가 나기도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재까지도 나는 여전히 관계에 신경 쓰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다시 되묻게 된다. ‘관계는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 굉장히 소중하고 큰 존재로 다가왔기에 내가 이토록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닐까. 한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다 다른 견해를 쏟아내는 것처럼 나에게 '클레어의 카메라'란 내 학창시절의 과거를 회상시키는 매개체였고, 또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여러 물음들을 쏟아내는 영화였다.